『유엔과 한국, 1945-1973: 건국, 평화, 경제 성장의 파트너십』 책 출간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 연구팀이 2016년부터 3년간 수행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의 건국과 전쟁 및 전후 재건 관련 외교문서 DB화: UN 및 산하기구를 중심으로’ 연구의 결실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유엔과 한국, 1945-1973: 건국, 평화, 경제 성장의 파트너십』은 1945년부터 197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 한국이 유엔(United Nations)을 비롯한 국제 사회와 역사적으로 조우하고 상호 관계를 맺게 된 연원과 과정을 담은 기록물이다.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의 연구팀은 해당 시기에 유엔이 한반도에 설치한 특별 기구들과 산하 기관들의 지원 활동을 기록한 4만여 점의 원문 자료들을 발굴하여 해제하는 작업에 3년간 매진했다. 그중 국가 성립, 한국 전쟁과 복구, 초기 경제 발전 과정에서의 핵심적 사실들을 분석하고 정리했다. 연구책임자를 맡았던 최동주 연구소장이 연구에 참여한 8명의 공저자들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책은 시기별로 한국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유엔 및 그 산하 기관들이 초점을 맞춘 활동 방향에 따라 크게 다섯 가지 서사로 나뉘어져 있다. 유엔이 공정한 선거 관리와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해 파견한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과 뒤이어 남북한 갈등을 관리하는 임무를 부여한 유엔한국위원단(UNCOK)의 활동으로 대표되는 정부 수립 전후 시기, 유엔군사령부(UNC) 중심의 다국적 군사 협력으로 북한의 군사 침략에 맞섰던 한국 전쟁 시기, 또한 같은 시기에 유엔한국민사지원사령부(UNCACK)와 유엔한국재건단(UNKRA)이 협력과 갈등을 반복하며 여력을 쏟았던 민간인 구호와 구제 활동, 이후 유엔과 그 산하 기구들이 각각의 분야에서 재건 노력을 기울였던 전후 복구 시기, 마지막으로 유엔이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측면에서 지원한 경제 성장 시기이다. 

 

| 출판사 서평 |

 

건국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 북한의 침략으로 불과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함락당하며 국가 존망의 기로에 섰던 대한민국이 가까스로 기사회생하여 체제와 영토, 국민을 지켜낼 수 있었던 데는 유엔군의 개입과 지원이 결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우리가 전쟁으로 황폐화된 국토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이후 산업화와 경제 성장의 발판을 놓는 데 있어서도 유엔과 국제 사회의 도움이 소중한 마중물이 되어 주었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다. 이는 국제 구호 단체들이 나눠준 밀가루로 주린 배를 채우거나 미군들 뒤를 따라 다니며 연신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던 기억을 간직한 전쟁 세대들은 물론이거니와, 이제껏 전쟁과 절대적 빈곤을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밀레니얼 세대들에게조차도 상식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뒤이은 전쟁, 전후 복구, 경제 성장이라는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잇기 위해 유엔과 국제 사회가 어떠한 대응 전략 아래 그 어떤 체계를 구축하고 실행에 옮겼는지를 구체적으로 아는 이들은 드물다.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근현대사를 전공한 관련 연구자들 중에서도 그 전체적인 과정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이들은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유엔과 한국, 1945-1973: 건국, 평화, 경제 성장의 파트너십』은 바로 그런 현실에 착목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책이다. 그동안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누구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실존하는 원문 자료들에 기초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 시도한 연구자들의 노력의 결실이 이 책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책에서는 유엔이 1948년 5·10 총선거의 공정한 관리와 민주적 정부 수립을 위해 설치한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에서부터 뒤이어 한반도에 주둔한 외국군의 철수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한 유엔한국위원단(UNCOK), 북한군의 침략에 맞선 군사적 대응을 이끈 유엔군사령부(UNC), 전시 민간인 구제를 위해 만들어진 유엔한국민사지원사령부(UNCACK), 전후 재건을 담당한 유엔한국재건단(UNKRA), 한반도 통일 추진과 경제 복구를 지원한 유엔한국통일재건위원회(UNCURK), 그 외 각 분야별로 구호와 원조 활동을 벌인 유엔 산하 기구들의 창설 과정과 구조, 활동들을 일관된 틀에 맞춰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숙명여대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의 연구팀은 유엔과 한국 간의 관계를 드러내주는 무려 4만여 점의 원문 자료들을 사전에 확보해, 일일이 해제하고 분석한 뒤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이를 집짓기에 비유하자면, 지나간 역사의 터전에 유엔과 한국 간의 파트너십이라는 터파기를 한 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자재들을 모아 토대를 쌓고 철골을 올린 다음 콘크리트를 부어 하나의 집을 완성한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한편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들 가운데는 문득 이런 의문 하나를 품을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역사학이 아닌, 주로 국제정치와 안보, 사회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이 왜 굳이 7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에 주목해 그를 정리하는 작업에 나섰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거기에 대한 답은 편저자인 최동주가 쓴 서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 

 

해당 장에서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 국민들이 알지 못했거나 잊었던 사실들이 다시금 조명되어 대한민국의 기틀이 다져지는 과정에서 유엔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는 바람을 피력하고 있다. 얼핏 원론적인 수사로 들리는 이 말은 오늘날 이 땅에서 많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 즉 근래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일제의 식민 지배와 그로 인한 폐해들을 부정하는 목소리들이 대두되는 것처럼, 실존하는 사료들을 끊임없이 발굴해 꼼꼼히 기록해놓는 수고를 거치지 않은 역사는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의도로든 부정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특히 객관적인 사실이나 진실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탈진실(post truth)의 시대, 자신의 가치관과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사실들은 외면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대한민국 건국에서부터 전쟁을 거쳐 경제 성장에 이르기까지의 유엔과 국제 사회의 역할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비단 역사학자들의 몫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 안보를 전공한 연구자들의 영역이기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학자로서 최동주는 같은 서문에서 “유엔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성공적으로 재건을 이룩한 독특한 발전 모델로서 대한민국의 사례가 학계에 소개되어, 개발 도상의 과정에 있는 지구 사회의 많은 국가들 사이에서 세계 정부 유엔의 기여와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기를 고대한다”고도 밝히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배타적 보호주의와 고립주의가 다시 고개를 드는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까지 겹치면서 과거 국제 질서의 균형추 역할을 하던 유엔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론마저 대두되는 이 시대, 이 책의 저자들은 그럼에도 ‘세계 정부’로서의 유엔의 기여와 역할은 중요하며, 그를 증명해주는 사례로 대한민국의 사례가 널리 인용되기를 바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 목차 |

 

Ⅰ. 들어가며

 

Ⅱ.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의 유엔의 역할

1. 유엔 대표단의 한반도 상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2. 남북한 대치하에서의 유엔의 위기관리

 

Ⅲ. 한국 전쟁과 유엔의 개입

1. 유엔군사령부의 전쟁 수행과 다국적 군사 협력

Ⅳ. 한국 전쟁 기간 유엔의 민간 구제 활동

1. 유엔군의 전시 민간인 구제 시스템과 활약상

2. 초창기 유엔 전문 기구의 피난민 구제 활동

 

Ⅴ. 전쟁 폐허의 재건과 유엔

1. 한국 재건을 위한 유엔 전담 기구의 창설과 활동

2. 유엔의 한반도 통일 추진과 경제 복구 지원

3. 아동과 여성을 위한 유엔의 긴급 구호 사업

4. 유엔의 교육 재건 활동 내역

5. 유엔의 보건 위생 지원 활동

Ⅵ. 경제 성장 초기 유엔과 세계은행의 기여

1. 유엔의 한국 근대화 지원 프로젝트

2. 유엔의 경제 개발 견인 역할

3. 유엔의 원자력 기구 창설과 한국의 초기 핵정책

 

Ⅶ. 나가며

1. 연구의 의미

2. 추가적인 연구 과제

 

참고 문헌

 

 

| 본문 중에서 |

 

한국과 유엔은 같은 해인 1945년에 사실상 나란히 출범했다. 한국은 비록 그해 광복과 동시에 주권 국가를 출범시키지는 못했으나, 이때부터 유엔과 숙명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DNA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유엔 헌장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민주 독립 국가, 인도주의, 인권, 국제 평화 같은 키워드가 포함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한국은 유엔이 지향하는 가치와 규범을 적극 수용하며 주권 국가로서의 첫 걸음을 떼기 시작했던 것이다.  _들어가며, 16쪽

 

한국은 정부 수립 직후부터 거의 모든 역량을 결집하여 유엔과의 협력에 전력투구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이러한 결정이 정치 지도자의 선택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당시 대다수 한국민들의 정서에 따른 것인지는 더 규명해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연한 사실은 한국이 주권 국가로 공식 출범하는 과정에서부터 유엔과 DNA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고, 한국 정부도 출범 직후부터 유엔 산하 기관에 적극 가입하는 정책을 구사했다는 점이다. 한국 전쟁이 터지자 거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며 한국 구하기에 나선 유엔의 선택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_들어가며, 22쪽

 

2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과 구소련 간의 한반도 관리 방안에 대한 협의가 실패로 돌아가자,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유엔으로 상정하면서 그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UNTCOK이었다. UNTCOK는 1947년 11월 14일 2차 유엔 총회의 결의에 따라 1948년 5·10 총선거의 공정한 감시 및 관리와 민주적 정부 수립을 위해 설치된 기구로서, 1947년부터 1948년까지 활동했다. 이후 UNTCOK는 1948년 유엔한국위원단UNCOK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기까지 정부 수립과 한국 전쟁, 전후 복구 시기 등 대한민국 건설 과정에서 유엔의 역할을 이끄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_본문, 42쪽

 

한국 정부의 수립으로 UNTCOK의 임무는 종결되고, 이제 유엔한국위원단United Nations Commission on Korea, UNCOK이 그 뒤를 이어 받게 되었다. 이로써 한반도 문제에 관한 유엔의 임무는 한국 정부를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한반도에 주둔한 외국군의 철수를 감시하는 것으로 한정되었다. UNCOK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약 22개월 동안 남북한 갈등과 대치 국면을 관리하는 유엔의 위기관리 체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_본문, 56쪽

 

유엔군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 UNC는 역사적으로 한국과 유엔 간의 관계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실체로 기억된다. 그들은 한국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한국을 구했을 뿐 아니라 전후 과정에서도 존폐의 위기를 극복해오며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UNC는 한국의 명운과 결부되어온 실체라는 것이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는다. 더구나 유엔의 역사에서 UNC가 유일무이한 유엔 상비군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한반도 문제가 유엔과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_본문, 76쪽

 

유엔군사령부 예하 기관으로 창설된 유엔한국민사지원사령부United Nations Civil Assistance Command in Korea, UNCACK는 전쟁의 폐허에서 신음하던 한국인들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 비록 군사 조직의 성격으로 운용되긴 했으나, 여기에 참여한 인적 구성을 보면 국제기구에서 파견된 민간 전문 인력들이 다수 참여하는 ‘민·군 융합 조직’이었다. UNCACK는 한국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의식주 제공에서부터 질병 예방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_본문, 136쪽

 

유엔 차원의 난민 기구가 한국에서 행한 인도적 지원 역할은 상대적으로 보조적인 수준에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전쟁 시기에 이루어진 IRO의 협력과 그 속에 내포된 인도주의 정신은 전후 한국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인도적 지원에 관심을 갖는 데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UNHCR은 설립 초기 규정에 의해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지는 못하였지만, 1970년대 말 이후 한국이 난민 문제 지원과 같은 인도주의적 사업을 실시하면서 필요한 이론적·조직적 기반을 형성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을 주었다.  _본문, 221쪽

 

1950년 10월경 한반도에서 공산군을 몰아내기 위해 북진에 나선 유엔군은 당시 미군을 필두로 전쟁의 조기 종료와 한반도 내 통일 국가 건설을 계획하고 한반도 전체의 재건을 담당할 기구 창설에 대한 구상을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50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는 호주와 미국 대표단이 공동으로 제출한 결의안 초안을 기반으로 한국 구호 활동을 위한 조직 구성에 착수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이 안건에 유엔한국재건단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 UNKRA 창설에 대한 구상이 최초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_본문, 234쪽

 

전쟁으로 파괴된 한국의 경제를 구제하고 재건한다는 명목하에 한국 전쟁 도중 설립된 유엔한국통일재건위원회United Nations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UNCURK는 1973년 11월 28일 해체되기까지 만 23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해 그 창설 목적대로 “통일되고 독립한 민주 정부”를 한반도에 수립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UNCURK는 북한 측의 거부와 비협조로 끝내 본래의 목적을 실현하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그럼에도 UNCURK는 한국이 유엔이 인정하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외교적 이미지를 각인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 세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데 있어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다.  _본문, 255쪽

 

전쟁 발발 직전 한국은 UNESCO에 가입하여 전쟁 기간과 전후 재건 및 복구 기간에 다양한 교육 지원의 수혜를 받았다. 유엔과 UNESCO는 한국뿐만 아니라 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신생 독립국들과 개발 도상국들에 대해서도 교육 원조를 시행했지만, 한국에서와 같은 성공은 쉽지 않았다. 당시 UNESCO가 우리에게 준 것은 배움을 이어갈 책과 미래를 바꿀 지혜였다.  _본문, 293쪽

 

전쟁 기간 중에 한국을 돕기 위해 나선 국가들은 파병 16개국, 구호물자와 의료 지원에 나선 45개국을 합쳐 총 60여 개국에 달했다. 유엔 산하 기구 9개 단체와 미국, 영국 등에 소재한 수많은 NGO들도 지원에 앞장섰다. 그야말로 ‘글로벌 연대’가 형성된 것이며, 이를 주도한 것이 유엔이었다.  _나가며, 379쪽

 

한반도에서의 유엔의 역할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 언젠가 한국민들의 숙원인 한반도 통일이 이루어지고, 통일 국가가 안정적으로 구축되는 과정에서 유엔이 선도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남북한 모두가 유엔 회원국이 된 이상, 통일 과정에서 유엔의 참여를 거부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 유엔이 한반도에서 수행한 역할을 되짚어 보고, 이를 토대로 한반도의 미래 비전을 탐색하는 과업이 앞으로 더 크게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_나가며, 3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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