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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문서로 본 한국 재건사] ④ 유엔한국재건단의 전상자 재활 프로그램

관리자
2022-04-12


발행처
세계일보
발행일
2017-12-04


[유엔 문서로 본 한국 재건사] ④ 유엔한국재건단의 전상자 재활 프로그램

6·25전쟁 중 지역별 재활시설 추진 물리치료·직업훈련… ‘인도주의’ 실천 / 한국 사회복지 담당 실무자 두란, 주거지 확보·재활·범죄 예방 건의 / 1954년 부산 동래에 최초로 지어… 참전자 이어 어린이 환자도 돌봐 / 유엔의 지침 따른 순수 민간조직… 7년간 활동… 상이군인 재활 힘써

 

지난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넘어 귀순하다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 관련 뉴스가 화제가 됐다. 아주대 경기남부권응급의료센터장 이국종 교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 병사는 목숨을 잃거나 목숨을 건지더라도 반신불수 내지는 장애인이 될 뻔했다.

6·25전쟁 때는 이처럼 총상자가 부지기수였다. 이른바 전상자(戰傷者·전쟁이나 전투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로 불리는 이들이다. 의료시설이 부족하고 열악하다 보니 치료를 제대로 받고 온전하게 사회로 복귀하기란 쉽지 않았다. 장애재활은 꿈꾸기조차 어려웠다.

 

 

1954년 9월 1일 부산 동래에 설립된 유엔 전상자 재활시설에서 전상군인이 목발을 짚고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유엔 아카이브 자료

 

 

 

 

상당수 전상자는 구걸로 연명했다. 1950∼1960년대 의족(義足)이나 의수(義手)를 한 상이(傷痍)군인이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전사(戰史)는 보통 사상자 수와 난민(亂民), 전비(戰費)에 초점을 맞춘다. 전상자가 겪는 시련과 재활에 대한 기록은 찾기가 쉽지 않다. 이들이 겪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챙길 정도로 전후의 한국이 여유롭지 못했던 탓이다.

이런 점에서 6·25전쟁 당시 유엔한국재건단(UNKRA·이하 재건단)의 활동은 전상자에게는 희망의 불빛과도 같았다.

전상자의 의족, 의수 공급에서부터 재활시설 건립까지 대부분 재건단 원조를 통해 이뤄졌다. 4일 숙명여대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소장 최동주)가 발굴한 재건단 활동을 담은 유엔 아카이브(Archives·기록보관소) 문서에는 이와 관련된 기록이 다수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6·25전쟁 중 재건단 실무진이 한국인 전상자에 대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을 꼽을 수 있다. 1951년 10월 29일 한국의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실무책임자 구스타브 두란(Gustavo Duran) 재건단 사회복지국 부장은 도널드 킹슬리(Donald Kingsley) 재건단 대표에게 서한을 보냈다.

두란은 한국에서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한국인들의 임시 주거시설 확보와 △전상자 재활 △범죄 예방 3분야로 나눈 뒤 유엔 지원을 요청했다. 전상자 재활시설 확보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상이군인들을 민간인 피해자와 분리하고, 규모는 작지만 재활 프로그램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를 갖춘 개념으로 시작할 것”을 건의했다.

아울러 전상자 재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별도로 첨부했다. 재건단 실무진이 전상자에 가진 관심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1951년 10월 29일 유엔한국재건단 구스타브 두란 사회복지국 부장이 도널드 킹슬리 재건단 대표에게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사회복지 프로그램 도입을 요청한 서한.
숙명여대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 제공

첨부문서에 전상자 재활 배경에 대해 “한국전쟁 전상자에 대한 인도주의적 배려가 유엔정신에 부합하며 이들을 치유하는 일이 지체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재활 방향과 관련해서는 “부상 치료를 마친 전상자들의 재활은 물리치료(physiotherapy), 작업요법(occupational therapy·일상생활 복귀 치료), 직업훈련(vocational training) 3가지 프로그램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시설 마련에서는 “초동단계에서 재활시설은 환자 50명 정도와 직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시작하고, 이들 시설에 수용된 환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이 우선 건립돼야 한다”며 “대규모 재활시설은 현재 여건으로 볼 때 가능하지도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지역별로 소규모 재활시설 건립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또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한국인 직원이 있어야 하고, 국제적인 수준의 전문가들이 충원돼야 한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결론 부분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한국에서는 이런 재활시설이 운영된 적이 없으므로 외국의 경험을 최대한 살려 한국 여건에 부합하는 개념으로 시작하고, 특히 시각장애인에 대한 재활 프로그램으로 이동 진료소의 도입도 고려할 것”을 요청했다.

재건단의 이런 건의사항은 실제 추진되기도 했다.

 

유엔 기록을 보면 1954년 9월 1일 부산 동래에 이런 전상자 재활시설이 처음으로 건립됐다. 재건단은 재활시설 운영을 위해 미화 28만3000달러 상당의 장비를 사기도 했다. 처음에는 한국전쟁 참전군인을 대상으로 하다가 점차 어린이 환자도 포함했다. 어린이 병동을 위해 유네스코에서 2만4000달러가 지원된 사실도 확인됐다. 재건단은 1951년 3월부터 1958년 7월까지 활동했다. 이전에는 주한유엔민사지원처(UNCACK·United Nations Civil Assistance Command in Korea)가 민간인 구호와 구제활동을 전담했다. 민사지원처가 군사조직이고 재건단은 순수 민간조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는데 그 기능과 임무는 동일했다. 두 조직 모두 유엔의 결정과 지침에 따라 움직였다.


6·25전쟁에서 한국은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을 지켰다. 그 이면에는 이제 막 세계정부의 이상을 품고 출발한 유엔의 인도주의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상자에 대한 재활 치료 역시 그 연장선상이다.

그로부터 6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유엔은 북한을 상대로 핵과 미사일 폐기를 요구하며 제재를 하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반도와 유엔의 운명적 관계가 지속하고 있는 셈이다.

취재지원=이민룡 숙명여대 연구교수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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