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문서로 본 한국 재건사] ⑤ 네이선 보고서 등을 통해 본 재건 프로그램

관리자
2022-04-12


발행처
세계일보
발행일
2017-12-21


[유엔 문서로 본 한국 재건사] ⑤ 네이선 보고서 등을 통해 본 재건 프로그램

당시 한국의 경제·산업 매우 열악 평가…‘美원조 활용 자립경제 기틀 마련’ 방점 / 1950년대 초 전통사회 틀 갇혀 산업화 기반조차 마련되지 않아 / 日, 강점기에 한국경제 발전보다 자국경제 활용 목적 제한적 투자 / 6·25정전도 달갑게 생각 안 해 “유엔지원 토대로 경제개발 추진”

 

지난 반세기에 걸친 한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은 전 세계 수많은 개발도상국의 롤모델(역할모델)이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경제성장의 주요 요인으로 1960년대 박정희정부가 취한 일련의 거시경제 개혁과 국가주의(국가통제주의)적인 정부의 경제 개입을 꼽는다.

그렇다면 과연 박정희정부가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이런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사료들이 발굴됐다.

 


6·25전쟁 정전 후 1950년대 한국경제 재건을 위해 유엔 등 해외에서 지원된 각종 건설자재가 부산항에서 내려지고 있다.
유엔 자료

 

 

 

숙명여대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소장 최동주)가 21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50년 12월 유엔총회 결의에 의해 구성된 유엔한국재건단(UNKRA·운크라·이하 재건단)은 당시 각국 정부의 경제 자문을 하던 로버트 네이선(Robert R. Nathan)과 계약을 맺고 1954년 3월 한국경제개발계획 청사진을 마련한다. 일명 네이선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네이선 컨설팅사(Nathan Associates) 소속 경제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한국에 상주하면서 유엔과 협력해 만든 것이다. 초보적 단계이나 한국의 첫 장기 경제개발계획이라 할 수 있다. 방점은 미국의 원조자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자립경제 기틀을 마련하는 데 찍혔다.

1953년 8월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특사로 방한해 대한(對韓) 원조 3개년계획을 만들었던 헨리 태스카(Henry J. Tasca) 보고서와 함께 6·25전쟁 후 한국 경제 상황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사료다.

네이선 보고서는 재건 계획을 수립할 당시 한국의 경제 및 산업 수준이 대단히 열악하다고 평가했다. 또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경제 발전보다는 자국 경제에 활용할 목적으로 관련 분야에 대해 제한적 투자를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유엔한국재건단(UNKRA·운크라) 요청으로 1954년 3월 작성된 네이선 보고서.
숙명여대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 제공


통상 한반도의 산업화와 관련된 일본의 활동은 크게 3단계로 구분한다.

 

먼저 일제의 한반도 강점 초기는 조선총독부가 한반도를 일본 제조품 시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철저한 시장보호정책과 함께 신규 공장의 한국 내 설립 등을 제한한 시기다. 이 무렵 한반도와 일본의 무역거래는 한반도의 농산물과 일본의 일부 제조품에 그쳤다.


두 번째는 조선총독부가 규제를 철폐하고 일본 투자자들에게 토지·자본·금융 지원 등을 통해 한국 내 투자를 촉진한 제1차 세계대전(1914∼18) 무렵이다. 일본 내부 자본 축적이 커지면서 한반도 내 섬유, 광산, 수력발전 등에 대한 일본 주요 기업의 투자가 이어졌다.

마지막 단계는 1930~1940년대 초반이다. 한반도 북부 지역에는 중공업 투자를, 남부 지역에서는 지속적인 농업 장려 정책을 편 시기다.

네이선 보고서는 또 한국이 산업화 기반조차 마련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950년대 초 한국 상황은 초기 자본이 축적되지 않고 전통사회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전쟁을 겪으며 그나마 일제강점기에 일부 형성된 산업기반마저 송두리째 파괴돼 경제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번에 발견된 유엔 관련 주요 사료들은 전후(戰後)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 경제개발의 여건을 조성해갔는지를 보여준다.

1953년 5월 5일 작성된 재건단 보고서는 대구의대와 대전광물실험실 건립 계획과 실행 사항들을 수록하고 있다. 또 1954년도 재건단의 1억3000만달러 지출계획은 한국 정부와 합의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당시 백두진 국무총리는 이러한 지원 규모가 작다며 유엔에 증액을 요구했다. 결국 재건단은 4500만달러의 추가 지출계획을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7월 14일 재건단이 작성한 또 다른 보고서는 한국 재건의 목표로 두 가지를 기술하고 있다. 하나는 1958년까지 1인당 국민총생산(GNP) 100달러 달성하고, 두 번째는 국내총생산(GDP)을 당시 15억달러에서 23억5000만달러로 높인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런 목표가 한국 경제를 그나마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유엔에서 승인된 2억5000만달러 지원으로는 목표 달성이 어려우며, 9억달러의 증액이 필요하다고 재건단은 강조했다.

숙명여대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 이한희 교수는 “해당 보고서들과 유사한 사료들도 다수 발견된다”며 “대부분 유엔이 1950년대 한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어 “유엔이 만들어준 이러한 토대가 있었기에 1960년대 정부 주도의 경제 개혁 및 성장 드라이브가 실행에 옮겨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국전쟁 특수(特需)를 누리던 일본이 정전(停戰)을 달가워하지 않은 내용도 있다. 발굴된 사료는 한반도가 휴전에 따라 평화 모드가 조성될 경우 유엔이 일본의 산업 자재 구매를 줄일 수 있어 일본 각계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한국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을 활용해 자국의 경제성장을 꾀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취재지원=숙명여대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
김수연 팀장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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